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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일기] 작가1(작가일)

낡은이 2021. 6. 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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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이가 읽은 기간 : 웹에서 공개되었던 2020년 언제쯤, 책으로는 2021년 6월 1일부터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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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탈코', '페미니즘'이라는 워딩이 드러나는 책이나 미디어를 소비하게 된 것은 사실상 얼마 되지 않았다. 나 스스로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에는, 다른 이들처럼 페미니즘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거나 탈코, 시위, 보력 등 드러나는 행동은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20대의 어느 기간을 제외하면 꾸밈 노동에 그렇게 얽매여있지도 않았고 외모에 대해서는 '여드름이 나면 아프다', '나는 하체비만이라 바지 입기가 불편하다' 정도의 인식만 있었기 때문에 다른 탈코야끼들처럼 드라마틱한 탈코는 없었다. 물론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내 머리는 커트와 단발의 중간 정도의 긴 머리 길이를 유지했고 박박이로 민 것은 최근의 일이다. 머리를 민 것도 도배할 때 거추장스럽기 때문이었지 외적 탈코를 하겠단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나는 내 속탈코에 대한 자신이 있었던 거겠지. 자만이었나. 

 

작년 언제쯤인가 비혼공동체 안에서 탈코일기에 대한 언급이 많아졌고 나도 그 얘기에 합류하기 위해 웹으로 제공된 탈코일기를 보았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쓰는 용어(?)를 거의 쓰지 않았고, 탈코일기를 펼쳐 들었을 때, 의미가 정리된 상태의 하용가, 바용가 라는 말을 처음 보게 되었다. 하이용돈만남가능 이란 말도 처음 들어보았고 하이스펙, 용기, 가능성 이라는 새로운 의미도 알게 되었다. 굉장히 긍정적인 말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 사이에서 소소하게 얘깃거리가 되는 것이 있는데, 버스정류장에서, 알바하는 카페에서, 학교 어디쯤에서, 직장에서, 분명 탈코야끼 같은데 뭐라고 말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작년에 탈코일기를 읽을 때에는 '진짜 소리를 내서 하용가 라고 인사를 해?'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은근히 페미니즘 서적을 들고 다닌다거나 페미니즘 이슈 관련 스티커 등을 잘 보이는 곳에 붙이고 다니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때 그 페미니즘 서적을 다 읽지는 않았다. 낡은이는 사놓고 읽지 않기 대장이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머리를 탁 맞은 것 같았던 게, 나는 화장이라고 해봤자 비비크림 정도만 바르고 눈썹도 하나 그리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이 너무 안 꾸미는 거 아니냐고 했을 정도였고 가끔 예쁜 화장이 아니라 강해 보이고 싶어서 경극화장(ㅋ)을 했기 때문에 화장하는 시간이 얼마 들지 않는다고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탈코일기를 처음 봤던 그때에는 이미 비비크림 조차도 손 안 댄 지 오래된 상황이었지만 화장이란 것을 처음 할 때를 떠올려보니 내가 비비크림을 몇 분 만에 빨리 바르게 되는 날이 오기까지도 아주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20대 중반에 알바가 아닌 직장이란 곳에 입사하고, '예의가 아니다'라는 말 때문에 처음 바르게 된 비비크림. 이걸 얼마나 어떻게 발라야 할지 몰라서 거울을 붙잡고 한참을 발랐다 닦았다 그랬었다. 30분이 3분으로 단축될 때까지 나는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것이다. 

 

 

주변 여자들이 모두 화장을 하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밈 노동을 하고 있었기에 내가 하는 꾸밈 노동은 별거 아닌 것처럼 합리화되기 쉬웠다. 옆팀 누구에 비하면 나는 꾸미는 것도 아니지. 지금까지 들여왔던 나의 노동력이나 시간, 돈은 금방 다 잊혔다. 니들 좋으라고 하는 거 아니고 내가 나에게 만족하기 위해 하는 거라던 말도 지금 생각해보면 다 합리화였다. 남자들 보라고 꾸민다고 하면 여자로서 자존심 상하니까. 항상 남자를 싫어하고 이기고 싶었지만 결국은 남자사랑을 놓을 수 없었던 과거의 내가 있었다. 

 

 

경상도 가부장제의 표본이면서 당장 '먹고(표면 그대로의 표현임) 살' 고민을 해야 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안돼, 돈없어, 하지마, 라는 말을 먹은 밥그릇 수보다 더 많이 듣고 자라왔고 '여자가~'로 시작하는 말은 더 더 많이 들으며 자라왔다. 정확하게는 '여자'가 아니라 '가시나' 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무슨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시작이라도 했다면 이렇게 굳은 뇌와 삐걱거리는 몸, 상처 난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최소한 내 또래 남자에게 뒤처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나이 30이 지나면 본인의 인생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데 가장 최근까지도 나의 인생을 나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가스라이팅이 있었고 그걸 깨고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나는 아직 모든 것을 묵살당했던 열여섯살, 스무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렇게 나이라는 숫자만 채워가고 있는 것 같다. 

 

당신에게 착한 딸, 좋은 딸이 되어주고 싶었고, 그렇게 당신은 내 삶의 우선순위에 나 자신보다 더 위에 있으면서도 항상 나를 더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게끔 만들었다. 내가 가장 만만한 자식이었을까. 아들 말고는 다 필요 없었을까. 집에 같이 살고있는 아들을 두고 멀리 사는 나를 불러야 할 이유는 뭐였을까. 

 

당신이 정말 나와 화목하게 지내길 바랐다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가족 간에 서로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는 내 반응이 자기 생각과 다르자 본인이 죽어버리겠다고 했었다. 그렇게 엄마와 마지막 연락을 한지 한 달, 엄마는 지병으로 입원을 했고 나는 연락을 더 하지 않았다.

 

 

당신이 힘들게 살아왔고 지금도 힘들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다른 가족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당신, 나에게는 항상 가해자였고 마지막 통화까지 그렇게 함으로써 나에게 죄책감을 더해주었지. 나는 내가 이대로 죽는대도, 당신이 이대로 죽는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당신 뱃속에서 날 죽이지 않아 준 것에 대한 감사도 이제 하지 않을 거고.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이유로 나를 미워했던 당신에게 그렇게 사랑받고 싶어 버둥거렸던 내 30년한테 미안해서라도 이제 내 감정을 당신에게 쓰지는 못할 것 같아. 이제 각자 살아보자.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도 힘들어하는 내가 요즘 매일 스트레칭을 10~20분씩 하고 있다. 물론 이미 운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 보기엔 그건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국민체조 5분도 못하고 쓰러지는 내가 20분의 지구력이라니 참 많이 발전했다. 

 

아! 배고프다! 밥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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