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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유영] 비수도권 탐방기 <지역의 사생활99> 부산편 - 산호 작가

낡은이 2021. 4. 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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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이가 읽은 기간 : 작년 8월, 그리고 오늘. 
※ 사용한 이미지가 문제 될 시 수정 및 삭제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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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작년, 전북 군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만화 전문 출판사인 삐약삐약북스의 텀블벅 때문이었다. 작가부부인 불친님과 불키드님이 운영하시는 출판사인데, 이 곳에서 나온 만화책들은 지금까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두 작가님의 그림과 글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겠다.

제목에도 적혀있지만 비수도권 탐방기, 그러니까 지역 조망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지금이 아무리 검색하면 나오는 시대라 할지라도, 수도권이 아닌 지역은 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하고 각 지역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지역에 사는 나로서는 꽤 반가운 펀딩이었다. 

나는 리워드로 9권 전권을 선택했고 작업 기간이 다른 3권을 제외한 6권을 한꺼번에 받았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책이 바로 이 「비와 유영」이었는데, 색깔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표지에 그려진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왠지 '부산'하면 붉은색이 떠오르는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색과, 지역과, 그림과, 제목까지, 모든 것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그 붉은 표지에서 나는, 열정이나 활발함 보다는 왠지 모를 나른함을 느꼈다. 피와 같다고도 느꼈다. 실재하는 혈액이라기보다 마음속에 갇혀 있는 답답함이나 상처 같은 것들. 아니나 다를까 본 내용을 한 장 넘기자 무기력한 표정으로 재봉틀을 만지고 있는 유영이 있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이라는 공간 안에 있는 고통뿐인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람들. 그리고 딸의 이상한 죄책감. 이 만화를 보면서 많은 공감을 했다. 왜 딸들은 부채감을 느껴야 했던 걸까. 

 

이 이야기는 부산 광안리 바다에서 만난 인간과 인어의 이야기다. 내가 이 만화책을 6권 중에 가장 먼저 집어 들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인어의 묘사 부분이었다. 아무 포털사이트에 '인어'라고 검색하면 가슴이 다 가려지지도 않는 조개나 해초 같은 가슴가리개들을 한 그림이 잔뜩 나온다. 외형적으로 그렇게 묘사되는 인어가 나는 싫었다. 하지만 인어의 신체를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심각한 환경문제까지 현실적으로 꺼내오는 방식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인어인 '비'는 부산 사투리를 쓴다. 나는 경상도 토박이라 '비'의 대사를 더빙하듯이 읽으며 보았다. 산호 작가님이 단편영화 스탭을 많이 하셨다는 인터뷰를 봤는데 그래서인지 만화가 굉장히 극적이기도 하고 음성 드라마(?) 같은 걸로 제작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늘 악몽을 꾸던 유영에게 악몽이 아닌 꿈으로 다가온 '비'. 지금의 유영에게 꼭 필요한 숨구멍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유영의 사고를 전환하게 하는 매개. 유영을 독립적인 사람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계기. 

 

하지만 그 꿈같은 시간을 즐기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가족이라는 불편한 존재는 밥이라는 말을 꼭 하고야 만다. 자기 손으로 밥 차려 먹으면 죽는 줄 아는 시대에 뒤떨어진 남자가 여기 있네. 

 

'나는 그 자리에서 비가 완전히 그칠 때까지 서 있었다.' 동명의 남가수 때문에 '비'라는 이름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 장면을 보며 그 이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에 대한 유영의 감정이 '비'로 표현이 되고 있는 듯했다. 

 

유영은 이제 혼자서 나아가려고 한다. 요즘 내가 전동드릴에 재미를 붙이고 있어서 그런지 이 컷이 매우 흥미로웠다. 지금껏 왜 나는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나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느끼고 있다. 여성의 자립! 유영 파이팅!! 낡은이도 파이팅!!! 

 

부산 광안리는 내가 좋아하는 러브얼스도 있고, 오래전에 광안리에서 먹었던 밀면도 맛있었는데, 「비와 유영」을 두 번째 읽고 나니 또 부산에 가고 싶다. 

돈가스를 주문한 나에게 밥은 먹고 싶은 만큼 먹으라던 광안리 들어가는 길목에 있던 밀면집이 이제 기억이 안 난다. 친구 밀면을 뺏아 먹던 십 년 전쯤으로 잠깐 돌아가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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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텀블벅 진행이 종료되어서 흔적만 남아있는 상태이지만 혹시나 흥미가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tumblbug.com/localcomic?ref=discover

 

비수도권 탐방기 <지역의 사생활99>

9곳의 비수도권 도시, 9명의 작가, 9개의 이야기

www.tumblbug.com

www.instagram.com/ppiyackppiyackbooks

 

삐약삐약출판사의 인스타그램 링크도 보탭니다. 구매의향이 있으시면 재고문의도 인스타로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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